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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와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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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6건 조회 7,621회 작성일 12-11-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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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지금은 한국에서 볼수 없는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한국 전쟁후.
부산이나, 대 도시 역 앞에가면 볼수 있었던 지겟군도 이제는 .
추억의 옛일이고.

혹시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가면 아직도 볼수 있을 리어커.  <--- 이게 한국말인가요?
리야카 라고?  일본말인지?

미국에 좀 살다보니,  앞에서 사람이 주로 끌고 다녀서

Rear Car 가 아닌가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

언젠가 한 사람이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5-3=2)와 (2+2=4)가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어렵게 생각이 들지않는 계산이라 쉽게 대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설명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5-3=2) 란,
어떤 오해(5)라도 세번(3)을 생각하면 이해(2)할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2+2=4) 란, 이해(2)와 이해(2)가 모일때 사랑(4)이 된다는 뜻 입니다.라고 설명을 하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사람을 오해를 할때가 있고 오해를 받기도 할때가 있습니다...
오해는 대개 잘못된 선입견,편견,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고 결국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 있습니다...
(5-3=2) 라는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번 생각하면 이해할수 있다는 풀이가 새삼 귀하게 여겨집니다...

사실 영어로 "이해"를 말하는 "understand"는 "밑에 서다"라는 뜻으로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이해라는 것입니다...

이해와 이해가 모여 사랑이 된다는 말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이해인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이해와 이해가 모일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낚시 바늘의 되꼬부라진 부분을 "미늘"이라고 한담니다.
한번 걸린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은 "미늘" 때문이랍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가까운 타인의 모습으로 살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미늘을 감춘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벽앞에 모두가 타인이 되곤 합니다만...

(5-3=2)와 (2+2=4)란 단순한 셈
기억 하면서 살면은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로막고 때로는 멀리 떨어뜨려 놓는 온갖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풀어버리고 우리 모두 "사랑"에 이르렀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글은 어쩌면 제자신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주고픈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간에 오해라는 것이 참 어줍잖은 하잖은 일로 오해가 생길때도 있습니다 .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상대방이 정말 오해를 할 경우가 있고 또 무조건 선입견의 감정으로 오해를 만들 때도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때는 유치원도 없었고, 유아원도 없었고 그런시대에는
부모님들은 직장전선으로 하루 종일 나가고,  우리는 한국나이로 8살에
만 7살에 국민학교에 갔지요.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공짜로 가는
그 국민학교 말입니다.  춥고,  덥고..  그런것 신경 안쓰고, 원래 그런가 보다
그렇케 생각하고. 집에가서 뭐를 먹을건가를 더 걱정했던 시절 사진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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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5-3=2)와 (2+2=4)가 무슨 뜻인지 "  이글은 . .  새로 산 Note  Book 에 다른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던

Files 를 옮기는중에..  쫐아 온글입니다.  아마 아주 오래 전에 좋은글이라고 생각해서 저장해 두었을것 같은데..  참 오래 간만에 읽었는데도 .

좋은 글 이군요.

이제는 기회가 있을때 마다 읽어야 할것 같군요.



비바람 막 몰아치는 오후 입니다.  좋은 저녁들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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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내일



3.속회 모임 안내: 월넛크릭 속회 모임 11월 30일 금요일, 최 치덕 장로 최 선자 권사댁



있군요.  최 장로님 댁 주소와 전화번호 아시는분 저에게 좀 알려 주세요



eKorean@gmail.com  전화 408.  946.  8000 번 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혼자서 글을 너무 많이 올리는것이 아닌가요?

이제,

다른분들이 많이 방문하시고 .  글을 올리시면,



저는 가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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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정말 말이 됩니다. 오해도 세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고, 이해를 두번 더하면 사랑이 되는것이지요. 우리 모두 이런 원리를 실천하고 체험하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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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참으로 좋은 글을 올리셨습니다. 내용이 깊을 뿐만 아니라 외우기도 쉬운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지요.

저의 집 주소는 2365 Pine Knoll Drive #7, Walnut Creek, CA. 94595 입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는 808-232-4883 입니다. 하와이서 쓰던 번호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eKorean 님은 625 동란 이후 출생일듯 한데 어찌 625 동란중에 겪은 그 고생을 기억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이 크게 일어 납니다. 아무리 보아도 625 동란 세대라고 보기에는 너무 젊어서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최치덕

그리고 이 내용은 부탁하신대로 위의 이멜 주소와 전화 번호에다 보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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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이후에 출생했으니까?  알지요. 그리고 볼수도 있고 . ..  "Humor 입니다".  6.25 전에 사시다가, ..

일제 시대에 사시던 옛 어른들.  사변 나기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으면 . .

아마 저런 장면을 못 보았을겁니다.    저는 대한민국 부산 수영구 광안리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귀저기 차고, 무릎으로 바닥 쓸고 다닐적 생각은 전혀 안나지만,

5 .  ~ 6세 .  코흘리고.  옷자락으로 코를 쓰~ 윽 문지르면서,  짱돌 (돌) 가지고 강가에서 동네 친구들과

자동차 흉내 내고, 역 앞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한. 기억은 아직도 납니다.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읍에서 국민학교 전에 부터 뛰어 놀다가, 국민학교.  2 학년 까지 그곳에서 

착한 어린이 교육을 받았기에 익히 기억이 나지요.  보리밥에 고추장 비벼먹고, 수제비 .  시도 때도 없이 먹었던 "보리고개" 시절에 유년을 보냈거던요.  검정 고무신 신고,  닳거나, 찟어지면,  장날에 외할아버지가 .. 장터에 가서, 헌 타이어로 땜빵해 온것을 신고 다니던 아주 가난하게 .. 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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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그래서 eKorea님을 만나면 재미있는 얘기 많이 나눌수 있을것 같애서 교회에서 기다렸지요 나도 625피난시절 부산 송도구에서 4년을 살아서 부산 문뎅이가 다 된 줄 알았지요 만나면 부사예기 사진얘기 컴퓨터얘기 많은 것을 얘기 할수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다시 만날수 있기 바라면서 기다리겠습니다. 최치덕